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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호텔에서 만난 연필 한 자루
등록일:2013-08-06, 조회수:1153
이굴기의 1분 영상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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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류학적으로 볼 때 한 곳에 정주하는 식물이 아니고 대지와 분리된 동물의 일원이다. 그러니 숙명적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버릇은 오래된 습관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좀 체신머리가 없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러는 것보다도 그러지 않는 것이 훨씬 윗길인 줄은 둔한 머리로도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나도 이제 거울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행동을 그려볼 줄 아는 단계는 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후 그러지 말자고 다짐을 수없이 해보건만 이 버릇을 좀체 제압하지 못했다.
 

 

서두가 제법 거창해졌다. 뭐, 별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지금 연필 한 자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어느 땐 가끔 두리번거려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중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일쑤 두리번거리는 것에 부담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외적인 경우도 있으니 그것은 여행을 할 때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책임과 부담도 벗어나는 곳이니 그럴 땐 마음놓고 두리번거리자고 마음을 먹기도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나를 아는 이는 나와 같은 처지의 일행들뿐이지 않는가.
 

 

중국소설을 전공하는 분들의 모임인 중국학센터에서는 방학을 이용하여 여행을 떠난다. 나도 어쩌다 인연이 되어 가끔 참가한다. 중국에 관한한 해박한 분들이 기획한 것이니만큼 일반 여행사를 통해서는 갈 수는 없는 여행지를 찾아가는 쏠쏠한 쾌감이 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다녀온 곳이 주자(朱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무이산 여행이었다. 과연 중국다운 중국제(製) 풍경. 일필휘지로 내갈긴 한자(漢字)를 그대로 빼박은 듯한 산수(山水). 그 자연의 풍경 앞에서 실컷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나는 바깥에서만 두리번거린 게 아니었다. 호텔에서 투숙하고서도 나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호텔에 가면 나는 방안에 구비된 안내책자 옆에 끼워진 필기구에 주목을 한다. 간단한 메모를 위해 내가 소지하는 것도 있지만 이 호텔에서 구비하여 제공하는 필기구의 종류가 늘 궁금한 것이다. 그냥 소비품으로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필기구의 품질이야 사실 뭘 따지랴만 나중 시간이 흘러 내 수중에 남는 건 그 필기구와 그에 촉발되어 떠오르는 여러 기억들뿐일지도 모른다.
 

 

아뭏던 그런 이유로 필기구에는 눈독을 들이는 편인데, 그때 무이산 근처 어느 호텔에서 만난 필기구에 나는 그만 혹, 하고 말았다. 그것은 상투적인 볼펜이 아니었다. 연필이었다. 연필은 연필이되 아주 조잡한 연필. 그것은 나무에 흑연을 박아놓은 고래(古來)의 연필이 아니었다. 그것은 효율을 중시하는 현대의 문명답게 심과 손잡이만 있는 연필이었다. 그러니 깎을 필요도 없는 아주 단순한 연필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조잡한 필기구에 혹 하고 말았던 것이다.
 

 

볼펜이 아니라서 좋았고, 간단해서 좋았고, 볼품이 없어 좋았고, 일견 조잡해서 좋았다. 그 연필을 보는 순간 그 연필로 쓸 수 있는 문장들은 공책 한 권으로는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연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몇 가지 주르륵 엮어지기도 했다.
 

 

내 방에는 하나밖에 없는 연필. 연필 수집에 나섰다. 옆방에 부탁해서 몇 자루 챙겼다. 그러고도 욕심이 생겼다. 호텔을 나설 때 복도에서 청소하는 분들을 용케 만났을 때, 그분들이 미는 큰 수레에 수건, 비누, 칫솔 등 각종 소모품들 사이에 그 연필통이 있었다! 안 통하는 말로 이야기했더니 웃으며 한 주먹 쥐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 연필은 나의 애장품이 되었다. 멀리 꽃산행을 갈 때 꼭 챙긴다. 사진 대신 혹 꽃의 모양을 그릴 때 그 연필을 이용하는 것이다. 누구는 단골집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기댄다면 필기구를 통해서 일생을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를 대략 꼽자면 연필(초등학교)-만년필(중학교)-볼펜(고등학교)-볼펜(대학교)-타자기(군대)-볼펜(대학교)로 이어지다가 다시 타자기, 볼펜, 컴퓨터로 이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만년필에 꽂혔다가 이제는 붓과 볼펜과 연필을 애용하는 편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달 중국학센터에서는 신장위구르 지역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탐험하는 여행을 했다. 중국이 파키스탄과 맞붙은 가장 서쪽의 지역이었다. 사막 도시인 카스(喀什, 캬슈가르)에 가서 신덕상무주점(新德商務酒店)에 여장을 풀었다. 그 낯선 호텔에 가서 두리번거리는 나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예의 그 연필이었다. 손잡이에 상호만 달랐을 뿐 예전에 내가 수집한 것과 꼭 같은 조잡한, 볼품없는, 그래서 참 정다운 연필 한 자루.
 

 

그날 밤 기름진 저녁을 먹고 독한 백주를 먹고 카스의 거리를 헤매다가 알딸딸한 기분으로 호텔로 돌아와 침대맡에 앉아, 그 연필을 들고, 신덕상무주점의 메모지에 쓴 어설픈 흔적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연필로, 침을 묻히며, 사각사각 글 쓰는 마음. 이 연필은 깎을 테두리 나무가 없어 그대로 흑연이라서 침을 묻힐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가 지금 굳이 침을, 고인 침을 기울여, 이 흑연에 침을 묻히는 것은, 그 두터운 연필심을 녹이려는 뜻도 있거니와, 그냥 단맛, 쓴맛, 짠맛을 기억하며, 누구 말마따나, 그래도 내가 제공한 모든 맛난 것들을 저 혼자 독차지하고 누린 혀에게, 따끔한 맛을 보이기 위하여. 실제로 그렇게 혀에, 말에, 의례적인 단어로 굳은 혀를 날카롭고 뾰쬭한 연필심으로 찌르자, 이역 만리의 낯선 지방에서, 많은 어린 시절의 일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2013. 7.12. 타클라마칸 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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