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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골산에서 본 갈림길
등록일:2013-11-14, 조회수:1073
이굴기의 1분 영상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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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둔내면 금골마을을 한눈에 굽어보는 금골산 정상에 섰다. 금골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마을이 끝나고 산 초입에서부터 등산로가 가팔랐다. 해서 쉽게 생각한 등산객의 등을 땀으로 흠뻑 젖게 한 뒤에야 정상을 허락했다. 거대한 바위산이었다,

 

정상에서 서니 진도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에 가로막혀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는 섬의 조건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까이 가서 보면 파도가 치면서 서로 팽팽히 대립하겠지만 이곳에서 보니 그저 조화로운 풍경이었다.

 

진도는 섬이지만 이렇게 높고 훌륭한 산이 있듯 진도의 형편이 바다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테두리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사람의 마을은 그 들판이 한번씩 잘록하게 접혀지는 곳에 숨은 듯 자리잡고 있었다.

 

들판은 심사숙고의 현장인 바둑판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가로세로 직선이 뻗어 있었고 그 직선은 굵기가 조금씩 달랐다. 이제 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들판은 색깔도 조금씩 달랐다. 벼를 베어낸 곳이라 흙이 그대로 드러나 곳도 많았지만 특용작물을 심어놓은 곳은 파릇파릇한 색상이 융단 같았다.

 

저 들판 한 중앙에서는 흰 연기가 뭉게뭉게 일어났다. 내년 봄에 대비하여 흙의 정기를 돋우려는 것일까. 논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저 연기는 논의 이곳저곳을 청소하는 중이다. 말라버린 풀과 벼 밑둥을 태우며 지심(地心)을 돋우기도 할 것이다. 가까이에서는 아마 타닥타닥 소리도 제법 요란 할 것이다. 그 와중에 미처 피하지 못한 벌레나 곤충이 화장(火葬) 당하는 소리.

 

게으르고 천천히 올라가는 흰 연기를 보다가 무릎을 쳤다. 몇 해 전 궁리출판에서 펴낸 책의 표지와 퍽 닮은 이미지가 눈에 선명하게 포착되는 게 아닌가. 그 책은 <직관의 두 얼굴>이라고 하는 책이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바둑 격언이 있는 것처럼 심사숙고하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심사숙고. 깊이 생각하고 오래 궁구하는 것. 그렇게 한다고 그 결과가 늘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이에 대비되는 것으로 직관을 들 수가 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좌고우면 않으면서 단박에 결정을 내는 것이다. 직관, 단박에 바로 보는 것. 불완전한 인간 사고의 틈으로 난 지름길 또는 함정 매순간의 선택 앞에서 우리의 직관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런 주제를 다룬 그 책의 표지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내가 갈림길 앞에서 선 상황을 보여준다.



 

 

그 이미지를 떠올리며 진도의 들판을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들판에 난 모든 길들이 갈림길이 아닌가. 구획정리된 곳보다 마을과 밭을 이어주는 길은 그 상황을 더욱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십자가를 닮은 전봇대 아래 트럭 하나가 달리는 길. 그 길들은 모두가 갈림길의 집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했다. 어느 밭의 가운데에는 잘 조성된 무덤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도 저 안으로 들어앉은 분들은 지금 바라보는 풍경 안에서 무수한 갈림길을 택하고 또 택한 뒤에 저 곳으로 들어갔으리라.

 

산 정상에서 한 발짝은 아래 동네에선 몇 개 마을에 해당한다. 금골산 정상에서 몸의 각도를 조금 비트니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그 풍경은 논과 밭이 있었지만 사람의 냄새가 좀더 강조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아주 풍경이었으되 그곳도 길들은 모두 갈림길들의 연속이었다.

 

중앙에 있는 것은 초등학교인 것 같았다. 밍겅 같은 운동장이 있고 교문이 있었다. 그 교문으로 흘러들기 위해서는 여러 갈림길에서 한 길을 버리고 버려야 했다. 그 꼬불꼬불한 길을 버리고서야 교문에 도착하여 운동장을 밟는 것이었다.

 

물론 이 학교를 거쳐 나간 학생들은 다시 갈림길을 거치고 거쳐 어떤 이들은 저 들판에서 일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저 진도대교를 너머 대처로 나아갔을 것이다. 저마다의 많은 갈림길에서 숱한 선택을 반복하면서.

 

금골산에서 기억할만한 나무는 몇 없었다. 야생화도 거의 겨울로 가는 길목으로 들어선 터라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새비나무, 지네발란, 참싸리, 자란, 잔대 등을 관찰했다. 산을 거의 내려와 어느 바위에서 본 바위솔이 기억에 남았다.

 

일행보다 걸음을 빨리 했다. 금골산 정상에서 초등학교로 짐작되는 곳의 교훈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동네이니 방향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골목이 끝나는 곳마다 감으로 길을 택해야 했다. 중간에 새콩을 까는 아주머니께 물어보기도 했다. 짐작대로 초등학교였다.

 

금성초등학교.  측백나무로 잘 단장된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밟아 보았다. 방금 올랐던 금골산 정상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맨맨하고 깨끗할 줄 알았던 운동장은 울퉁불퉁했다. 하늘에서 내린 비가 흐른 흔적도 있었다. 기울기도 있었고 흠집이 많았다. 마구 뛰논 아이들의 흔적이 사방에 모래 위에 가득 했다. 적어도 운동장에서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는 발자국들.
 

태극기가 나부끼는 건물 중앙에 교훈이 적혀 있었다. 살아가는데 심사숙고와 직관은 모두 필요할 것이다. 비교우위를 논할 일도 아닐 것이다. 금골산 아래에 자리잡은 이 학교는 이 사실을 잘 아는 듯 갈릴김마다에서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주는 충고를 이렇게 간직하고 있었다. <바르게 깨우쳐 가슴으로 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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