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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소
등록일:2017-05-18, 조회수:122
이굴기의 1분 영상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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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한테 그리도 다급히 쫓긴 것일까. 아니라면 어떤 먹이를 냅다 좇았던 것일까. 정신없이 달리다가 맞닥뜨리고 보니 갈림길이었다. 잠깐 방심하다가 중도(中道)를 택한 것일까. 나무 너머에 무엇이라도 본 것일까. 그래서 나무 사이로 돌진했던 것!

걸린 건 머리인데 꼼짝할 수 없는 건 몸뚱어리 전체다. 달릴 땐 다리 덕분이었는데 쓰러지고 보니 다리가 너무 걸리적거리는구나. 이 좁은 가지를 통과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조금 더 굶어 몸을 가지보다 더 날씬하게 만들면 된다. 하지만 그러기엔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르겠는가.

모가지가 나사처럼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너 바퀴 몸통을 팽그르르 돌려 머리를 분리한 뒤 다시 결합시키면 간단할 일이겠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 소는 등허리가 삼각형처럼 뾰족해서 누울 수가 없다. 한 바퀴조차 돌 수가 없는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진퇴양난의 곤경에서 그저 눈만 껌뻑거리는 일 말고는 달리 다른 도리가 없었다. 꽉 끼인 나무는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 모가지를 조르는 것이었다. 해가 가고 달이 가는 것처럼, 둥그런 두 바퀴를 타고 가는 이들이 찾아온 건 하늘의 뜻이었을까.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도살장에서 소를 죽일 때 이마에 망치를 한 방 딱, 때린다고 한다. 그 육중하던 소도 그 한방에 픽, 쓰러지고야 만다. 고통의 시간을 줄여 생(生)에서 사(死)로 훌쩍 건너뛰는 것,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소는 깜짝 놀랐다. 누가 이마를 슥 문지르지 않겠는가. 다행이 망치는 아니었다. 안심하라는 뜻의 부드러운 손길인 줄이야 알겠다. 오늘은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겼다. 간신히 나무의 가지를 떨쳐내고 툴툴 일어서는 소의 두개골 사이로 언제가 닥칠지 모르는 공포를 대신하는 서늘함이 이마를 쓱 문지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제기랄, 문제는 갈림길이야! 아직도 후덜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제 갈 길을 가는 소를 보내고 나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지를 벌리고 서 있다. 페이스북을 보다가 우연히 만난 영상이다. 무심히 텅 빈 나무의 가지를 보는데 몇 해 전 울릉도에 꽃산행 갔을 때 너도밤나무 보고 쓴 글이 떠올랐다. 여기에 덧붙인다.

나무는 너도밤나무였다. 나무는 굵고 잎사귀가 하늘로 무성히 뻗어 있었다. 나무는 1년에 얼마나 자랄까. 또 얼마나 굵어질까. 그에겐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하지만 나무의 허리를 가늠해보니 분명 그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 보였다. 나이테를 감추고 허벅지가 튼실한 너도밤나무. 본인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이요 굵기였다. 

이젠 그도 그러한 나이가 되었나. 어깨는 물론이요 키도 초라해져버렸나. 옛날이라면 나무 앞에 서서 나무를 툭툭 건드리고 기분이라도 잡치면 가지를 그냥 꺾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늘 압도적인 너도밤나무 앞에 서니 그런 호기는 간곳이 없고 그의 몸 일부분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한 눈에 보아도 그것은 어쩌면 그리도 그의 하부를 빼닮았을까.누군가는 몸뚱어리 중에서 가슴께가 가장 복잡하다고 했다. 하지만 저 부분도 엄청 복잡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인간사의 희한한 이야기가 대부분 바로 저기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가슴에서 괜한 부끄러움도 나타나고, 머리에서는 까닭 없는 죄의식도 생겨났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그이의 그곳에도 거뭇한 거웃이 저렇게 은밀하게 자라나는 것! 오늘 그는 너도밤나무 앞에 서서, 너도밤나무를 똑바로 보면서 자신의 생애도 짧게 관찰해보기로 했다. 장난처럼 흘러간 시절도 있었다. 작전하듯 어렵게 다가간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줄타기 하듯 순식간에 날들은 흘러들고 흘러가고.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옛날로 던져버리고도 싶었다. 자신의 골짜기를 들끓게 하던 힘을 이젠 그만 시들게 하고도 싶었다. 이런저런 욕망의 등불을 조용히 끄고도 싶었다. 좌우의 숲처럼 그저 조용히 늙어가고도 싶었다. 그리하여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한번 해보았다. 하지만 어쩌나. 바로 그게 얼마나 큰 욕심인지! 그걸 잘 아는 그는 갈림길 같은 사타구니에서 걸음을 한 움큼 꺼내서는 너도밤나무 앞을 또 부리나케 떠나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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