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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의 저녁에 만난 거미들
등록일:2017-06-16, 조회수:225
이굴기의 1분 영상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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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다. 정읍이다. 무인텔 J가 있다. 그 옆에 화덕구이 한우 고깃집이 있다. 차츰차츰 어둠이 짙어지고 있다. 하늘의 등이 희미해지자 교대하듯 땅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텔에도, 식당에도 요란한 네온사인이 번쩍거렸다. 세상의 모든 에너지는 하늘에서 내려와 땅으로 흐른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전기는 건물의 테두리를 따라 흘렀다. 먹는 것과 자는 곳.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번들거리는 풍경이었다.

둑방길이다. 산책 나온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이 오갔다. 퇴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기 직전 자전거 두 대가 지나갔다. 밤과 낮이 교대하는 순간에 자전거의 둥근 두 개의 바퀴를 보자니, 하늘에서 태양과 달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가 사람을 목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듯 태양과 달도 그렇게 세월을 운반한다. 하루를 마감하고 쉬러가는 사람들. 자세히 볼 순 없지만 아마 편안한 얼굴들일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쉬는 시간이다. 오늘 묻힌 얼룩을 닦으러 집으로 간다.

외곽이다. 멀리 정읍 시내의 불빛도 휘황하게 번져온다. 도시는 강력한 불빛들의 결사체다. 이곳은 시에서 조성한 길이다. 가로수가 간격을 맞추어 도열하고 있다. 개울의 물은 말라버렸다. 껑충한 식물들이 경쟁하고 있다. 일년생의 풀들은 대궁만 남아 있기도 하다. 미라처럼 그 자세와 그 태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따가운 햇살 대신 흐뭇한 달빛이 내려와 어루만지는 중이다.



건너편이다. 가로수인 당단풍나무 아래다. 거미줄이다. 꼬물꼬물한다. 거미줄에 걸린 건 거미들이다. 아주 작은 거미들. 개미보다 더 작은 거미들. 거미들도 저녁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한곳에 촘촘히 모여 있다. 어미 거미는 안 보인다. 아니, 이만한 거미라면 어미도 이만한 크기일 수도 있겠다. 짓궂게 거미줄을 흔들어 보았다. 몇 마리만 가느다란 길 위에서 재빠르게 몸을 놀릴 뿐이다. 녀석들도 졸리운가.

누에가 만드는 실로 비단을 만든다. 누에는 양식이 가능하지만 거미는 전혀 통제가 안 된다. 말하자면 자연산이다. 거미가 만드는 실을 상용화할 수 있다면 비단보다 더한 피륙을 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저 거미줄에 걸린 이슬이나 핥아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거미강 거미목에 속하는 절지동물인 거미. 거미는 바람이 불면 입안에서 거미줄을 내뻗어 타잔처럼 멀리멀리 이동한다고 한다. 정읍에서 만난 거미는 아직은 그럴 형편이 아닌 듯했다. 이 장소가 아직은 안락한 듯 튕,튕,튕, 튕기는 바람에도 더욱 거미줄을 붙들고 잘 준비에 여념이 없는 것 같았다. 어느 새 떠오른 달빛을 몸에 두르며 소박한 취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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