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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너무 길다
등록일:2018-05-16, 조회수:111
이굴기의 1분 영상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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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꼬리가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차마 코끝이 길어지지는 못하고
그 꼬리가 자꾸 길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꼬리는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내가 낳은 업보이다.
어느 날 그 긴 꼬리가 분명히 내 발등을 때릴 것이다.

있는 줄도 몰랐던 꼬리.
점점 윤곽이 갖춰져 가는 꼬리.
이제는 희미하게 더듬어지기도 하는 나의 꼬리.

나도 모르게 물컹, 밟힐 것 같은 나의 꼬리.
그게 무섭기도 하여서 산으로 간다.
어쩐지 산에서는 나의 꼬리가 감춰지는 것 같다.

현재로선 그게 이 번들거리는 세상에서의 유일한 비상구이다.
산에서 잠깐 신선한 행복을 만나는 것도 그 덕분일 것이다.

지난주 포천의 국망봉에 갔다.
한북정맥의 험준한 산들이 잇닿은 곳의 한 봉우리이다.
중간에 경유한 이동갈비촌에는 마을 전체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번화한 마을 전체를 어디로 떼메고 가기라도 할 듯
기름에 쩐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긴 게 어디 내 꼬리뿐일까.
고요와 침묵이 단단하게 뭉쳐 있는 바위틈에서
풀어진 넥타이처럼 긴 뱀을 만났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등하교길에서 가끔 만났던 뱀.
우리한테 걸리면 목숨을 잃기도 했던 뱀.
발 하나 없어도 무서운 우리를 보고 재빨리 도망치던 뱀.

이제는 뱀을 보면 내가 무섭다.
하지만 호기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옛날 돌멩이 처들고 담부랑 아래에서 눈싸움하던 생각도 났다.

뱀, 너무 길다.
프랑스의 쥘 르나르의 짧은 시도 생각났다.

나이가 들수록 꽂히는 문장이 있다.
자연과의 접촉 면적을 가급적 넓히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나는
자연과 아주 길게 접촉한 셈이라 할 수 있겠다.

뱀,
숲에 떨구고 온 나의 꼬리,
아주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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