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1월 28일 두영건설과 계약을 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건축 현장이라고 그 땅의 테두리 안에서 오로지 건축의 행위만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그 일이 그 일로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일은 바깥에서도 충분하고 넉넉하게 벌어진다. 마치 내가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보름달이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듯!
‘궁리사옥 건설 현장’이라는 간판 주위에서 캐낸 몇 가지 풍경을 여기에 적어본다.
1. 컨테이너 처마
어린 시절과 관련해서 서울을 말하자면 나도 할 말이 있다. 내가 3학년까지 다녔던 경남 거창군 주상면의 완대초등학교는 거창읍에서 40리 떨어져 있다. 우리 어머니 거창시장에 내다팔려고 머리에 쌀 이고 걸어갈 때 두 시간이나 잡아먹던 거리이다. 이 학교에는 다섯 개 마을의 아이들이 다녔다. 그 마을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열거하자면 막터, 오무, 오류골, 완대, 돗골이다. 학교는 오무와 오류골 사이에 있었다. 오무에서 자란 나는 참 행복하게도 외가도 같은 학군인 돗골이었다. “야, 나 오늘 외갓집에 간다고 어무이한테 전해도.” 학교 끝나고 오무 아이들한테 이야기하고 돗골 아이들하고 즉흥적으로 외할머니한테 가기도 했었다. 외갓집 가는 길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내가 다닐 때 우리 학년에 남녀 학생 다해서 서른 명쯤 되었다. 겨울날 쉬는 시간이면 모두들 송판으로 만든 교사(校舍) 벽으로 모여들었다. 따뜻한 햇살이 허술한 옷을 데워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이들이 맞붙었다. 어느 동네가 더 좋으냐고 시비가 일어난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이런저런 장점들을 끌어모으면서 서로 제 동네 자랑하느라 마구 핏대를 올렸다. 하지만 돗골 아이들의 한마디에 다른 동네 아이들은 한방에 갔다. “야, 씨바, 누가 서울에서 제일 가깝노!” --------졸저, <인왕산일기>에서 인용함.
집을 짓기 위해 본격 준비를 하면서 우선 컨테이너 집을 지었다. 망치 소리 울리며 집을 지은 건 아니었고 지게차로 사뿐히 내려놓자 집은 완성되었다. 그래도 잘만 꾸미면 아늑하기가 이를 데 없어 신방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 안에서 궁리의 집을 지을지휘부가 차려진 셈이었다.
2월이라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 컨테이너 벽에 가깝게 붙으면 아주 따뜻했다. 컨테이너가 열을 조금 발생시키기도 했지만 햇볕이 컨테이너의 이마를 때리고 그 앞에서 자글자글 놀기 때문이었다. 막 공사를 끝낸 기사도, 꽃심기를 끝낸 작업자도 쉬는 시간이면 커피를 들고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기초철근공사를 책임진 대표도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가 확인서에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완대초등학교 학생들이 2교시 수업이 끝나고 꿀맛 같은 10분간의 쉬는 시간을 송판벽 앞에서 오글오글 모여서 보냈듯 궁리 건축 현장의 사람들도 컨테이너 처마 밑에서 보내고 있었다. 참 따뜻했다.
2. 땅콩과 밤 그리고 호두
궁리 현장은 지켜보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진행이 빨랐다. 하루가 다르게 공정이 완성되었다. 착,착,착, 소리라도 들리는 것 같았다. 펜스작업, 꽃심기, 동재하시험, 파일박기, 흙파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먹줄을 놓기 위한 버림 콘크리트도 치고 굳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한 호흡을 멈추라는 듯 하늘에서 비가 왔다. 그리고 다음날 컨테이너 사무실에 들러 현장소장과 감독관이 도면을 앞에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곧 있을 철근 배근과 바닥 콘크리트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할 무렵 시공사인 두영건설 사장님께서 검은 봉지를 사람 수대로 도면 옆에 툭, 올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보름이었다. 검은 봉지를 열고 보니 알뜰한 부럼꾸러미였다. 땅콩, 밤, 호두로 구성된 한 보따리의 딱딱한 과일들. 부럼깨기는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한 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齒)를 튼튼하게 하려는 뜻으로 날밤·호두·은행·잣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풍속을 말한다. 글쎄, 그것만일까.
땅콩집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아파트를 탈출해서 자신의 집을 가지고 싶은 이들이 시도하는 건축이기도 하다. 건축현장의 콘테이너 집에서 야물고 딱딱하고 효과적인 부럼을 보자니 많이 생각이 일어났다. 호두를 깨고, 밤을 까고, 땅콩을 입에 털어 넣는 순간!
3. 도시락 차
시간은 단 한순간의 착오나 결핍, 느림도 없이 적확하게 도착했다가 정확하게 떠나간다. 9시도 있고 10시 10분이 있는가 싶었는데 11시 11분 11초가 도래하더니 어느 새 점심시간. 모두들 배꼽시간이 땡,땡,땡 울린다.
그 소리를 진압하기 위해서 도착한 건 기중기도, 크레인도, 굴착기, 불도저도, 화물차도 아니었다. 아주아주 조그맣고 작은 미니 봉고. 파주출판단지의 함바집에서 우리 현장으로 출동한 도시락 차였다.
우리나라 중국집의 배달 음식통은 전통적으로 철가방이 담당한다. 함석으로 만든 그 가방은 형태, 기능, 디자인에 있어 완벽한 제품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배달 나온 차의 뒷트렁크를 보니 맛있는 점심상이 옹기종기 차려졌다. 우리 현장의 작업자들을 위해 달려온, 철가방의 내부를 빼닮은 저 귀여운 차를 뭐라고 부를까.
4. 화장실의 스티커
건축 현장에는 이런저런 자재들도 많이 있지만 스티커도 많다. 요소요소마다 꼭 필요할 순간이 있을 때를 대비한 것들이다. 아파트 현관에 열쇠집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컨테이너에는 <고양인력개발 9XX-XXXX>. <지게차> <중장비> 등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는 광고들이다. 한켠에는 중장비 작업을 위한 고압가스도 있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위험물저장소 화기엄금>이란 표어가 붉은색으로 붙는다.
못, 칼, 핀, 철근 등 날카롭고 뾰족뾰족한 것들이 난만한 곳이라고 그런 무시무시한 말들만 난무하지는 않는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후미진 한곳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간이 화장실이 있다. 이곳 현장에는 최근에 왔지만 누구보다도 오랜 경력을 자랑하듯 흠이 많이 났고 낡은 티가 역력하다. 무엇보다도 땡볕에 그을려 색이 대부분 날아갔다.
얼마나 많은 여러 현장을 떠돌아다녔을까. 절에서는 이것을 해우소(解憂所)라고도 하는데 그간 건설현장에서 사소하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고민을 해결해준 게 바로 이것이기도 하겠다. 이 화장실의 소변기 위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신장개업.정/통/중/국/요/리.대복반점.신속배달.923-2727>. 시원하게 볼일을 처리하는데 눈높이에 맞춘 스티커. 어쩌면 아래에서 버리는 만큼 또 위에서 채우라는 뜻으로 입을 겨냥하는 높이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낡은 화장실의 빛바랜 스티커. 그냥 넘어가려다가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어보았다. 맙소사, 먹통일 줄 알았더니 정확한 음성! 자유로에서 진입하는 파주출판도시의 입구 근처에 있다고 했다. 내일 점심은 대복반점의 짬뽕?
5. 가로수의 새집
집을 짓겠다고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궁리보다 훨씬 먼저 이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지은 이가 있었다. 전원주택형 아파트인 헤르만하우스 쪽으로 난 가로수 위의 새집이었다. 둥지는 작년부터 자주 이 부지를 확인하고 방문할 때마다 유념히 보았는데 그때마다 아무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둥지에는 누가 사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아니 내가 그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야 옳은 말이겠다. 지하 바닥을 파고 지상으로 차츰차츰 올라가면서 새집과의 거리도 가까워질 것이다. 실제로 궁리건물이 완공되면 새집이 있는 곳은 3층 근처라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될 것이다.
파주출판도시 사업협동조합에 문의했더니 이 단지에는 상수리나무, 이팝나무, 회화나무, 중국단풍 등의 가로수를 심었다고 했다. 궁리 옆의 가로수는 상수리나무였다. 작년 잎을 아직도 달고 있는 상수리나무. 이제 곧 상수리나무에도 올해의 새싹이 나고 푸른 잎이 무성해질 것이다.
궁리의 건설 현장에 새 한 마리가 방문했다. 2층으로 솟아오른 기둥의 철근 위에 날렵하게 잠시 앉았다. 흠, 그새 제법 올라왔군! 새는 짧게 중얼거리곤 한 바퀴 둘러보고 심학산 쪽으로 휙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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