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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에서 만난 작가│『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하학』을 우리말로 옮긴 조재호 역자 인터뷰



Q∥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하학』의 옮긴이로 궁리 독자분들께 처음 인사를 전하게 되셨습니다. 그동안 어떤 공부를 했고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안녕하세요. 조재호라고 합니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에서 수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뉴욕 주립대Stony Brook University에서 미분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투자은행의 외환 옵션 부서에서 수학적 모델링 관련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가 박사학위 과정 중에 공부했던 일부 내용이,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외환 가격에 대한 파생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현재도 일하면서 수학을 꾸준히 공부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Q∥선생님께서 전공한 미분기하학은 어떤 분야인가요?


A∥크게 보면, 기하학은 공간을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다루고자 하는 공간의 종류와 그 공간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들의 차이에 따라서 세부분야가 결정되는데요. 이 관점에서, 미분기하학은 미분 가능한 공간들에 대한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어왔습니다. 국소적으로 보면 지면은 그저 평평하게만 보이기 때문이지요. 미분기하학은 이처럼 "국소적으로 보면 평면 같은” 공간들을 미적분학,선형대수학,해석학,미분방정식과 같은 다양한 도구들을 활용하여 이해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많은 예시 중 하나를 들자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 또한 미분기하학을 기반에 두고 있습니다.


 


Q∥이 책을 번역하면서 흥미로웠던 대목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셨나요?


A∥이 책의2장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수리논리학 수업을 듣다 보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나가는 수학이라 하더라도 결국 어떤 지점에서는 더 이상 증명할 수 없는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여야”하고, 이것이 공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공리들 사이의 모순이 존재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공리들로부터 출발해서 또 다른 수학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기존의 수학과 전혀 다른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생각보다 복잡한 내용인데,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언급하면서 공리라는 개념을 제시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번역에 임하면서 책의 내용 그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면, 책에서 평행선 공리가 없다면 서로 다른 두 기하학인 평면 기하학과 쌍곡 기하학을 설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문득 포물선을 회전시킨 형태와 같은 공간(양의 곡률로 휘어진 공간)은 왜 설명할 수 없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샤워하면서도 고민해보고, 업무 중에도 고민하다가 결국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관련 내용에 대한 논문이 있더라구요. 이와 같이, 한 문장씩 넘어갈 때마다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계속 해봤던 것 같아요.


 


Q∥고등학생 시절 수학과 진학을 꿈꾸셨다고 하셨지요. 수학의 어떤 면이 재미있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A∥제가(지금도)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암기를 많이 해야 하는 과목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방 잊어버리기 쉬운 단편적인 사실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과목들보다는 중심의 이론으로부터 다른 사실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과목들에 좀 더 끌렸던 것 같네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로부터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들을 스스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암기를 해야 하는 과목은 해당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면 그냥 찍어야 하는데, 수학이나 물리 같은 과목에서는 기존에 알던 내용을 통해 유추도 해볼 수 있으니, 어떻게 보면 좀 더 공평한 과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이 책은 래리 고닉의 이런 헌사로 시작합니다. “유클리드와 나의 모든 수학 선생님에게”. 역자 선생님께도 기억에 남는 수학 선생님이 계시겠지요? 어떤 수학 선생님이 오래 기억이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A∥모든 선생님께 감사하지만, 고등학교1학년 때 수학과를 목표로 만들어주신 두 수학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한 분은 제 고등학교1학년 담임선생님이셨던 노병태 선생님입니다. 제가 수학을 재미있어하는 걸 보시고 여러 가지 관련 프로그램도 많이 추천해주시고, 대입 추천서도 써주신 감사한 분이에요. 덕분에 고등학교 때 쉽게 접하기 힘든 다양한 수학 프로그램들을 접할 수 있었고, 거기서 많은 재미를 느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아직도 현역에 계신, 제가 고등학교 3년간 현장강의로 수업을 들었던 한석원 선생님입니다. 생각하는 법과 공부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분이라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여담으로,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수학과,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과는 지원하지 말라”는 농담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수학과를 가고, 같은 수업을 듣던 동창 두 명은 각각 서울대 물리학과, 컴퓨터 공학과를 갔네요.


 


Q∥이 책은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주로 배우는‘평면 기하학’을 다루고 있는데요, 전통 기하학이라 할 수 있는 이 분야가 왜 중요하고, 왜 배워야 하는지 선생님의 생각을 들려주신다면요?


A∥수학에서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게 왜 사실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나친 선행학습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단기간에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지면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일단 외우게 되고, 해당 내용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게 됩니다.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봤어요. 그리고 이렇게 암기한 내용이 머리에서 증발해가면서, “아…이거 봤던 건데…”라는 기억만 남고 수학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지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평면 기하학을 공부해보는 것이 생각하는 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실들을 암기하여 알고 있는 것과, “왜”사실인지를 아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을 수시로 느끼게 되더라고요.


 


Q∥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하학』은 어떤 독자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팁을 주신다면요?끝인사 겸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요즘ChatGPT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기계와 경쟁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능력은 바로‘스스로 사유하는 힘’입니다. 즉,어떤 개념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왔는지 이해하고, 그 과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앞으로 중요한 재능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는 이 책이 좋은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증명을 보다 보면, 겉보기에는 당연하고 단순해 보이는 것들조차 막상 논증을 통해 증명을 하는 것은 꽤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당연해 보이는 것을 빈틈없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훈련을 거친다면, 이후 본인이 가지고 있던 지식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짚어보며 더 깊이 있는 사유를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생각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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