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주제>
- 왜 위인전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 왜 과학사를 알아야 하는가?
- 이 책을 왜 썼고, 모태가 된 강의는 왜 만들었나?
* 다음 이름들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시각적 이미지는?
아르키메데스 - 목욕탕 뉴턴 - 사과 에디슨 - 달걀
아인슈타인 - 우유
초등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과학은 쉬운 것이고 엉뚱한 사람이 잘한다’라고 억지로 포장하는 대 어린이용 사기극을 대학생까지 계속 믿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그 결과 에디슨은 언제나 발명왕일 뿐이다.
*왜 과학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 과학교육은 실패한 과학과 지나간 과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현재의 과학이 옳은 과학이 된다. 그러니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고, 다른 미래는 상상될 수 없다. - 과학자가 살던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과학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과학자의 업적도 이해하지 못한다.
*글쓰기가 문과적 역량인가?
“나는 말주변이 없어”하는 말은 “나는 무식한 사람이다, 둔한 사람이다”하는 소리다. 화제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경험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방식에 있다. ……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침묵은 말의 준비기간이요, 쉬는 기간이요, 바보들이 체면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피천득, ‘이야기’ 중에서
가끔씩 ‘뼈 속까지 공대라 서술형 답안을 써야 하는 교양수업이 겁난다.’고 표현하는 공대생들에게 읽혀 주고 싶은 글이다. ‘뼈 속까지 문과’거나 ‘뼈 속까지 이과’라는 표현은 자기 학문에 깊이 심취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이 글을 못 쓸 리 없다. 문제는 명료한 사고를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기 학문에 진실 됨으로 접근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견식이 짧음을 변명할 때 이런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스스로도 진실인양 속아버리고 타인에게 이런 생각을 전염시킨다. 아마 ‘뼈 속까지 공대’라면 새로운 지식으로 자기 전공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이 그리워 ‘제대로 된’ 교양수업이 기다려질 것이다. 명료한 방정식 풀이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 두서 없는 글을 쓸 리 만무하다. 위대한 과학자치고 말과 글을 못한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하였다. 그들의 업적이 말과 글이 아니면 무엇으로 표현된단 말인가?
* 나는 왜 '잡종'이라는 단어를 쓰는가?
요즘 ‘융합’이란 단어가 한창 유행이지만, 굳이 ‘잡종’이란 단어를 쓰는 이유는 바람직하고 자연스러운 학문과 학문간 융합과 그 이상의 것들이 뒤섞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예로 드는 것이 ‘다빈치의 직업이 무엇이냐’라는 유형의 질문이다. 다빈치를 ‘화가’, ‘건축가’, ‘기계공학자’ 같은 직업으로 분할하는 순간 다빈치의 정체성은 사라진다. 나는 다빈치를 위의 모든 직업군을 포괄하는 잡종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심지어는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적 딜레마를 파악하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혁신가들은 그 시대의 유행 학문 전반과 대안이론, 그리고 독특한 문화적 배경을 조합하며 자신의 답에 접근해 갔던 사람들이다.
과학의 역사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
인물의 생애에 감정이입하며 과학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쉽고 재미있는 역사공부가 아닐까.
달은 왜 지구를 도는가? 밀물과 썰물은 왜 일어나는가? 초등학교 시절 아주 쉽게 암기된 답이 있다. 달은 지구가 ‘잡아당기기’ 때문에 지구 주위를 돌며, 달이 바닷물을 ‘잡아당기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일어난다. 그것은 뉴턴에 의해 제시되고 현대인들의 대중교육에 선택되어 있는 답안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 아인슈타인이 모두 똑같은 질문에 다른 답을 했다는 사실을 마주하면 당혹스러워질 수 있다. 이처럼 다른 답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거꾸로 한번 답해보자. 어떤 일에 대한 해석이 사람들마다 같은 답들이 나오는 경우가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과학만은 단일한 답으로 귀결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특히 이런 선입견 때문에 과학의 결과에 대해서는 상당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과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잘못된 그림을 그리는 경우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각 시대의 기준과 철학에 따라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은 계속 변화해왔다. 따라서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도 이에 맞추어 변화해왔다고 볼 수 있다. 과학사는 바로 그 과정을 알려주고 현대의 과학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볼 여유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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